바로가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세미나에 참석해 토론에 열중하고 있는 교토대 학생들-한겨레)




"세계 제일이 아니라, 세계 유일을 추구하기 때문."

일본 교토대 화학과 출신으로 2001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노요리 료지 이화학연구소 소장의 명쾌한 대답이다.

교토대에서 또다시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2012년 교토대 IPS(만능세포)연구소의 야마나카 신야 교수가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음으로써, 일본이 받은 총 19개 노벨상 가운데 8개를 교토대가 배출하게 되었다.일본의 제1, 제2 노벨상을 안겨준 물리학자 유카와 히데키와 도모나가 신이치로도 교토대 출신이며, 일본 최고의 지성이라고 불리는 도쿄대보다 더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곳이 교토대이다.이처럼 교토대가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저력은 무엇일까?


(본 기사는 유료기사이며, 전문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11월호에서 보실수 있습니다. 바로가기)



조태호 (일본 이화학연구소 특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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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RedQueen.jpg» 출처 / <거울나라의 앨리스>, Nature:http://www.nature.com/news/2009/091209/full/news.2009.1134.html붉은 여왕의 손을 잡고 한참을 정신없이 달리던 앨리스, 문득 아무리 달려도 주위 풍경이 전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붉은 여왕을 향해 가뿐 숨을 들이쉬며 물어본다.  
“이상해요. 제가 있던 세상에서는, 이렇게 빨리 뛰면 보통 어딘가 다른 곳에 도착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여기선 왜 주위 풍경들이 그대로죠?”
“거긴 느려 터진 세상인가 보군.” 여왕이 대답한다. “여기에선 보다시피 네가 할 수 있는 만큼 힘껏 뛰어야 제자리에 머무를 수 있단다. 만일 어딘가로 가고 싶으면 두 배로 빨리 뛰어야만 해!”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속편인 <거울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주변 환경이 워낙 빨리 변하기 때문에 제자리에 머무는 것조차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붉은 여왕의 이야기는 진화생물학에서도 등장한다. 미국 시카고대학의 진화학자 밴 베일른은 종들이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선 끊임없이 자신을 위협하는 주변 환경과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두고 ‘붉은 여왕의 가설(Red Queen’s Hypothesis)‘이라는 의미 있는 이름을 붙였다.


가만히 있는 것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뒤쳐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적어도 종들간의 진화 경쟁에서는 그렇다. 알고 보니 우리는 그냥 멀쩡히 살아 있는 게 아니었다. 치열하게 싸우며 살아 있는 중이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몸 안의 전쟁, 세포와 바이러스간의 전쟁을 생생히 볼 수 있다면, 수백만 년에 걸쳐 끊임없이 우리의 생존을 위협해온 바이러스를 물리치고 존재해 있는 인간의 몸에 대해, 감사를 넘어 경외심마저 느끼게 될지 모르겠다. 


그런데 우리 몸의 천연 방어막이 역대 최악의 강적을 만난 듯하다. 바로 에이즈를 일으키는 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 즉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다. 유엔 산하의 에이즈 전담기구인 유엔 에이즈계획(UNAIDS)의 2009년 발표1)에 따르면, 전세계 3330만 명의 사람이 현재 HIV에 감염되어 있고, 260만 명이 해마다 새롭게 감염되며, 180만 명이 해마다 에이즈로 생명을 잃는다. 에이즈로 인해 숨진 사람의 숫자는 3000만 명을 넘어섰다. 아래 그림은 HIV 감염 정도를 나타낸 세계지도이다. ’붉은 여왕의 전쟁‘에서 한 걸음 뒤쳐져 버린 현실이 이처럼 세계 지도를 붉은 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00HIV1.jpg» 전세계 HIV 감염 지도. 출처/ UNAIDS Report on the Global AIDS Epidemic 2010 



인간 면역체제와 SIV 간의 치열한 싸움


HIV는 오래 전부터 원숭이면역결핍 바이러스, 즉 SIV(Simian immunodeficiency virus)의 형태로 원숭이, 침팬지 등에 존재했던 바이러스다. 수십만 년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 바이러스가 인간에 침투하기 시작한 것은 고작 100여 년 전 일이며2), 이렇게 많은 생명을 앗아가기까지는 고작 20여 년이 걸렸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강하고 빠르며 치명적인 적을 만났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완치의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우리 생체의 고유한 방어 시스템과 원숭이의 SIV 사이에서는 그동안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어째서 수십만 년 간 SIV로부터 우리 몸을 지켜오던 인체내 방어막이 갑작스레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인간의 몸 안에는 유전체(게놈)에 포함되어 우리가 자연스럽게 지니고 태어나는 두 가지의 방어 무기가 있다. 첫번째는 APOBEC3s란 이름을 지닌 유전자다. APOBEC3s는 HIV가 침입하면, HIV의 핵심 유전자에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결과적으로 체내에 침입한 HIV의 복제를 막는 역할을 한다.3)


두번째는 BST2, CD317, HM1.24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다가 최근에 그 기능이 좀더 명확히 보고됨과 동시에 테터린(Tetherin)이라는 이름을 지니게 된 단백질이다. HIV는 레트로바이러스(아래 용어 설명)의 한 종류로서, 우리몸의 면역 세포 안에 침입해 자신의 유전자를 정상 유전자에 주입하여 오염시킨 다음, 숙주세포로 하여금 HIV 복제 바이러스를 만들게 하는 방식으로 체내에 전파된다. 이렇게 막 복제된 HIV가 다른 면역세포를 공격하기 위해 밖으로 빠져 나오려는 순간, 이를 못 나가게 붙잡는 단백질이 바로 테터린이다. 테터린은 HIV뿐 아니라 같은 레트로 바이러스에 속한 에볼라 바이러스, 인플렌자A 바이러스 등에도 반응하는 것이 밝혀진바 있다.4)


00HIV2.jpg» 테터린이 레트로바이러스를 호스트 세포막에 결박한 모습. 그림 출처/ 미국 예일대학교 시옹연구실 The Xiong Laboratory at YALE UNIVERSITY 
  

[용어 설명] 레트로바이러스란? 

레트로바이러스는 숙주 세포에 침입하여 자신의 RNA를 DNA로 합성(역전사)한 뒤, 이렇게 만든 오염된 DNA를 숙주 세포의 DNA와 바꿔치기 하는 유형의 바이러스입니다. 이렇게 바뀌어진 DNA는 숙주 세포 내에서 없어지지 않고 계속 남아, 레트로바이러스의 RNA를 복제하게 되며 복제된 바이러스는 숙주세포를 빠져 나와, 또 다시 다른 세포를 공격합니다. 숙주 세포를 죽이지 않고 이용만 하기 때문에, 면역 체계가 바이러스만 인식해서 공격하거나 감염된 세포를 없애기 힘들게 됩니다. 백혈병을 일으키는 RNA종양바이러스와 후천성면역결핍증(AIDS)를 일으키는 HIV가 가장 대표적인 레트로바이러스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두가지 인체 방어 무기를 무력화하는 유전자군이 HIV의 유전체 안에도 존재한다. HIV는 이 유전자군을 이용해 자신의 번식 활동을 돕기 위한 7가지의 보조 단백질을 만드는데, 이를 HIV의 ’액서서리 단백질‘이라 부른다. HIV의 활동에 반드시 필요한 7가지의 액서서리 단백질은 각각 tat, rev, vpr, vif, nef, vpu, tev 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는데, 그 중 조금 전에 소개한한 두 가지 인체 방어 무기인 APOBEC3s와 테터린의 무력화를 담당하는 것이 vif5)와 vpu6)이다. vif는 APOBEC3s가 HIV의 핵심 유전자에 돌연변이를 일으키기 위해 또 다른 유전자인 APOBEC3G와 결합하는 것을 방해함으로써 결국에 이 활동을 중단시키고, vpu는 테터린의 세포막 부분에 결합하여 활동을 무력화한다. 


00HIV4.jpg» HIV에 감염된 숙주 세포의 전자현미경 사진(왼쪽)와 HIV의 3차원 일러스트(오른쪽, 내부 구조가 보이도록 그렸다). 출처/ wikipedia, http://visualscience.ru 

 
그런데 여기에서, 과학자들의 관심을 끌어오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이 vpu라는 단백질은 원숭이 체내에서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데, 침팬지의 체내에서만은 nef라는 또다른 액서서리 단백질이 이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알려졌다시피 사람의 HIV는 침팬지의 SIV한테서 전염된 것이다. 따라서 vpu와 nef의 이 기능 교환 현상을 분석하며 수십만 년 간 침팬지와 더불어 존재하면서도 그동안 사람이 SIV에 감염되지 않을수 있었던 원인의 실마리를 찾을수 있게된 것이다. 


vpu와 nef의 기능 교환 현상을 다시 설명하자면, SIV가 원숭이에서 침팬지로 종간 장벽을 뛰어넘는 순간, 과거의 공격 무기인 vpu를 버리고 새로운 무기인 nef로 무장했다는 뜻이며, 이는 SIV가 종간 장벽을 뛰어넘기 위해 스스로 진화했음을 의미하고 있다. 하지만 침팬지에서 인간으로 다시 한 번 장벽을 넘어 침투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은, 인간의 테터린이 nef의 활동을 막기 위한 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nef의 활동 방식은 세포막을 비집고 들어가야 하는 vpu와는 달리 테터린의 세포질 영역에 직접 작용하는 방식이다. 인간은 이 nef의 공격 대상이 되는 세포질 영역이 침팬지와는 미세하게 다르다. nef의 공격에 반드시 필요한 핵심적인 5개의 아미노산이 아예 없는 것이다. 마치 SIV의 '공격 예상로'를 미리 감지해 nef의 공격을 사전에 차단한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다. 


이 5개의 아미노산 탈락 현상은 네안데르탈인 유전자 조사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즉 인간의 몸이 이미 최소 80만 년 전부터 SIV의 침입에 대비해 왔다는 뜻이며7), 이것이 SIV가 사람에게 전염되지 못하게 하는 데에 기여해 온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현재는 SIV가 인간 몸에 침투하는 데 성공했을까? 그것은 SIV가 nef를 통한 공격 방식에서 vpu를 이용한 공격 방식으로 그 패턴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테터린은 nef에 대한 대비는 되어 있었으나 ’구식 무기‘인 vpu에 대한 대비는 되어 있지 않았다.  이런 작은 변화가 SIV를 HIV로 진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인류를 붉은 여왕의 전쟁에서 뒤쳐지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인류에 커다란 재앙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는 설명이 가능해진 것이다. 



복잡하고 정교한 바이러스에 맞선 싸움


SIV는 인간에게 침투하기 위해 80만년 이상을 기다린 셈이다. 그 오랜 세월 무너지지 않았던 인간의 방어막이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SIV가 HIV라는 이름을 얻으며 사람 몸에 스며든 것은 알고 보니 아주 최근에 발생한 일이다. 돌아보면, 제너의 실험 이후에 파스퇴르가 ’백신‘이란 이름을 붙인 뒤 인간에게 면역학이 정립되기 시작한 것도 겨우 1880년일이다. 수백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인간의 길고 긴 진화의 역사를 생각해 보면, 사람이 스스로 백신을 만들어 바이러스를 통제하기 시작한 때와 SIV가 인간을 향한 공격을 시작한 시기가 거의 일치하는 셈이다.


요즘 나는 HIV 발현 이유를 진화적 관점에서 해석하며 치료의 실마리를 찾는 프로젝트에 참여 중인데, 연구를 하다보면 간혹 HIV라는 존재가 혹시 지적 능력을 통해 스스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려는 인간을 견제하고자 만들어진, 차원 높은 자연의 섭리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리고 이런 사색은, 신이 만든 바이러스라 불릴 만큼 복잡하고 정교한 HIV라는 존재를, 백신을 만들어낸 우리의 궁극적 무기인 ’지적 능력‘을 통하여 끝내 이겨낼 수 있을까 하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 붉은 여왕의 전쟁에서 과연 인류는 HIV를 끝내 이겨낼 수 있을까? 


조태호 (일본 이화학연구소 특별연구원)





1) http://www.unaids.org/globalreport/

2) Worobey, M., Telfer, P., Souquiere, S.,Hunter,M.,Coleman,C.A.,Metzger,M. J., Reed, P., Makuwa, M., Hearn,G., Honarvar, S., Roques, P., Apetrei,C., Kazanji, M., and Marx, P. A.(2010). Island biogeography reveals the deep history of SIV. Science 329, 1487

3) Madani, N., and Kabat, D. (1998).An endogenous inhibitor of human immunode?ciency virus in human lymphocytes is overcome by the viral Vif protein. J. Virol. 72, 10251-10255.

4) Neil, S. J., Zang, T., and Bieniasz, P. D. (2008). Tetherin inhibits retrovirus release and is antagonized by HIV-1 Vpu. Nature 451, 425-430.

5) Simon, J. H., Gaddis,N. C., Fouchier, R.A., and Malim, M. H. (1998). Evidence for a newly discovered cellular anti-HIV-1 phenotype. Nat. Med. 4, 1397-1400. 

6) Varthakavi, V., Smith, R. M., Bour, S. P., Strebel, K., and Spearman, P (2003). Viral protein U counteracts a human host cell restriction that inhibits HIV-1 particle production. Proc. Natl. Acad. Sci. U.S.A. 100, 15154-15159.

7) Sauter, D., Specht, A., and Kirchhoff, F. (2010). Tetherin: Holding On an. Cell. 141, 392-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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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연구팀, ‘배 부르다’ 뇌에 알리는 유전자의 ‘변이 메커니즘’ 규명

한두개 유전자가 결정?... 결정적 영향은 아닌듯 환경 요인도 중요


00obesity1시민들이 '비만 체험복'을 입고서 운동하고 있다. 2010년 7월 촬영. 한겨레




<상특급>이란 미국 드라마가 국내에 방영된 적이 있었다. 초자연 현상이나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이야기들을 옴니버스 식으로 보여준 드라마인데, 그중 한 에피소드에 식욕을 참지 못해 끊임없이 먹어야 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극 후반, 어느 후미진 중식당에서 게걸스럽게 먹어대던 이 사람 손에 ‘행운의 과자’가 쥐어지고, 그 안에선 ‘당신은 이미 죽었습니다’란 으스스한 글귀가 나온다는 내용이다.


배가 부르지만 식욕을 억제하지 못해 끊임없이 먹는 사람들이 있다. 비만으로 치닫는 자신의 체형을 미약한 의지 탓으로 돌릴 수 밖에 없던 이들에게, 최근 <네이처 의학(Nature Medicine)>에 발표된 논문 하나가 새로운 변명거리를 선사할지도 모르겠다. 배가 불러도 식욕을 억제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특정 유전자의 기능이 망가졌을 때 생길 수 있다는 것. 미국 조지타운대학 메디컬센터 연구팀은 ‘뇌 유래 신경영양 인자 BDNF (Brain-derived Neurotropic Factor, BDNF)’에 관한 연구1)를 통해 이 유전자가 ‘배가 고프다’는 신호를 뇌의 시상하부에 전달하는 메카니즘을 비교적 상세히 규명했다. 이 유전자에 변이가 생기면 배가 부르다는 화학신호를 적절히 뇌에 전달하지 못해 결국 과식과 비만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 비만과 ‘비만 유전자’


만과 유전의 상관관계는 오랫동안 연구되어 온 과제 중 하나이다. 일란성 쌍둥이 중 한쪽이 비만일 경우에 나머지 한쪽도 비만일 확률이 이란성 쌍동이의 경우보다 훨씬 높다던지, 부모와 친자 간의 비만 상관관계가 부모와 양자 사이의 관계보다 강하다는 통계는 비만이 유전적 요인에 영향을 받음을 보여주는 오랜 자료로 사용되고 있다. 최근 유전자에 관한 연구가 더욱 활발해지면서 비만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의 정체가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는데, 위에 소개된 BDNF 유전자의 경우도 그 중 하나로 볼수 있다.


BDNF 유전자의 구체적 메카니즘이 규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사실 이 유전자가 식욕을 억제하는 렙틴이란 물질을 만드는 데 관여한다는 것은 이미 실험용 쥐(마우스)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당시 식욕을 억제하는 물질 생성에 관여한다는 이유로 ‘비만 유전자’라는 별칭과 함께 스포트라이트을 받던 이 유전자는 인류의 비만마저도 유전적 치료로 해방할 수 있다는 희망적 메시지와 함께 보도되기도 했다. 이번에 BDNF 유전자의 메카니즘을 규명한 바오지 수 박사도 최근 영국 언론매체 <데일리 메일>과 한 인터뷰2) 에서 자신의 목표는 BDNF 유전자를 제어해 비만을 억제하는 약을 만드는 것이라 말한 바 있다. 쉽게 살을 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관심과 욕구는, 유전자를 이용해 비만을 치료하고자 하는 여러 연구자들의 동기를 부여해 주었고, 지금도 많은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 쉽지 않은 유전자 치료의 길


렇다면 과연 유전자를 이용해 비만을 효과적으로 억제 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길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가장 최근 발표된 예인 BDNF 유전자도 이를 이용해 비만을 치료할수 있는지에 대해선 비관적인 전망이 많다. 인간의 비만은 실험용 쥐처럼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 소크연구소(Salk Institute) 연구팀은 피파델타(Peroxisome Proliferator-Activated Receptor Delta, PPARδ) 유전자가 지방 축적과 지방 연소의 균형을 잡아주는 메카니즘을 보고한 바 있다.3) PPARδ 변이 유전자의 보유 여부에 따라 같은 칼로리를 섭취해도 지방으로 축적되는 양이 다르기 때문에 결국 비만 체형이 될 가능성도 달라지는 것이다. 인간의 비만에 관여하는 유전자는 다양하며, 대략 100여 가지 이상의 유전적 요인이 결합된다고 알려져 있다. 인간 비만은 단지 한두 가지 유전자로 쉽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비만은 유전적 요인 뿐 아니라 환경적 요인에도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 미국 애리조나주의 ‘피마(Pima) 인디언’을 상대로 행해 진 연구는 비만의 원인이 단지 유전적 요인에만 있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 9세기~13세기 사이에 미 대륙으로 이주해 온 이들 네이티브 인디언들은 멕시코와 미국 두 나라로 나뉘어 살게 되는데, 이중 멕시코 영토에 거주한 이들은 보통 멕시코인들과 큰 차이가 없는 체형을 지니는 반면, 미국 영역에서 거주한 인디언들은 64%이상이 비만 체형을 지니게 된다.

 

00obesity2비만과 당뇨병 연구와 실험에 자주 이용되는 비만 형질의 쥐(왼쪽)와 당뇨병 형질의 쥐. 사진/ 미국 국립오크리지연구소(ORNL)

 


■ 같은 유전자, 다른 체형


골로이드 계에 해당하는 이들 피마 인디언들은 비만 관련 유전자로 알려진 PPARγ, UCP 등을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다. 미국 대륙 이주 초기에 건조한 사막 기후에 적응해가며 밀, 콩, 호박 등의 식물성 음식을 주로 섭취해야 했던 이들에게 이 비만 유전자들은 적절한 지방을 체내에 축적하여 기아에 대비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던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들 중 미국 애리조나 지역에 속하게 된 인디언들이 다른 미국인들과 똑같이 고지방, 고칼로리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긴다. 식생활의 단기적 변화는 이들 체형의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으며, 세계 최고의 당뇨병 발병을 보이는 민족이라는 불명예도 동시에 안겨주게 된 것이다.


내게도 비만 유전자가 있을까? 이 질문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위의 예에서 설명했듯이 비만 유전자의 보유 여부가 실제로 비만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하나의 유전자 때문에 비만이 될 만큼 인간의 몸은 단순하지 않다. 이 사실이 비만 유전자 보유자들에겐 희소식이 되겠지만, 유전자를 통해 비만 퇴치의 길을 찾고자 하는 이들에겐 아직 가야할 길을 요원하게 만드는 걸림돌이 되고 있기도 하다.



조태호 (일본 이화학연구소 특별연구원)


1) Liao GY, An JJ, Gharami K, Waterhouse EG, Vanevski F, Jones KR, Xu B., "Dendritically targeted Bdnf mRNA is essential for energy balance and response to leptin",  Nature Medicine, Mar 18 2012.

2) http://www.dailymail.co.uk/health/article-2116792/Georgetown-University-Medical-Centre-Scientists-discover-greedy-gene-makes-eat-full.html

3) Chih-Hao L, Ajay C, Ned U, Debbie L, William A. Boisvert, Ronald M. E., "Transcriptional Repression of Atherogenic Inflammation: Modulation by PPARδ",  Science 302 (5644): 453-457.






00kcomputer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의 슈퍼컴퓨터 '케이 컴퓨터'.




름부터 '슈퍼' 컴퓨터다.


올림픽 금메달을 따기 위해 수년 간 혼신을 다하는 선수들이 있듯이, 세계 각국에는 세계 랭킹 1위의 ‘슈퍼’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 혼신을 다하는 과학자들이 있다.   해마다 열리는 국제 슈퍼컴퓨팅 컨퍼런스(ISC)에선,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는 슈퍼컴퓨터들의 성능을 평가해 1위부터 500위까지 순위를 발표한다(http://www.top500.org/).  그동안 슈퍼컴퓨터 최강자의 자리는 줄곧 미국이 차지했으나, 과학 기술에 공격적인 투자를 선언한 중국이 2010년 6월 감격의 첫 1위를 차지하여 그 해 톱 뉴스에 올랐고,  곧 일본이 압도적 성능을 선보이며 6개월 만에 중국을 2위로 밀어내고 정상을 차지해 지진 여파로 우울해진 일본의 전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슈퍼컴퓨터 순위는 과연 몇 위일까?


국가 기술 경쟁력의 척도라 일컬어지는 슈퍼컴퓨터란 무엇이며, 무슨 목적으로 사용되는지, 우리가 보유한 기술력은 어느 정도인지를 쉽게 정리해 보았다.



슈퍼컴퓨터의 정의



퍼컴퓨터의 정의를 단순히 컴퓨터 사양이나 속도로 표현할 수는 없다. 지금 이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슈퍼컴퓨터의 사양은 신속히 업그레이드 되고 있기 때문이다.  슈퍼컴퓨터의 사양이 시대에 따라 급속히 변하기 때문에 '위키피디아'에서는 슈퍼컴퓨터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현 시점을 기준으로 최고의 기술, 최신의 사양을 접목하여 가장 빠른 성능을 보여주는 컴퓨터를 지칭하는 말.’ 일면 추상적이지만 이 정의가 지향하는 바는 명확하다. 인간이  컴퓨터란 장치를 만든 이후 현재까지 개발한  모든 기술을 조합하여 보여줄 수 있는 최고 성능의 컴퓨터. 인류 컴퓨터 기술의 정점을 구체화한 장치를 상징하는 단어가 곧 ‘슈퍼컴퓨터’인 것이다.


세계 최고의 슈퍼컴퓨터 속도를 이해하기 쉽게 비유하자면 다음과 같다.


전 세계 70억 인구를 일렬로 세워놓고 계산기를 하나씩 준다.  이들 모두에게 수학 문제집을 주고 1초에 한문제씩 풀게 한다. 이렇게 해서 17일간 밤낮으로 계산을 시켰을때 얻을 수 있는 총 계산량, 이것이 바로 현존하는 최고의 슈퍼컴퓨터가 단 '1초'에 계산할 수 있는 양이다.


슈퍼컴퓨터의 성능은  1초에 몇 번의 연산을 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플롭스(Flops)'라는 단위로 표현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도입된 키스티(KISTI,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의 슈퍼컴퓨터가 2 기가플롭스, 즉  1초에  20억 번의 연산을  행할 수 있었다.  최근 세계 슈퍼컴퓨터 랭킹 500 순위를 보면 500위로 턱걸이를 한 미국의 휼릿패커드 프롤라이언트(HP ProLiant)가 50.9 테라 플롭스, 즉 1초에 50조번의 연산이 가능하다.  1위를 차지한  일본 이화학연구소의 케이 컴퓨터(K computer, 京) 는 10.51 페타플롭스의 속도인데 이는  1초에1경회(1경은 1조의 1만배)의 연산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00tianhe1중국 국방과기대학이 지난 2009년 10월 공개한 슈퍼 컴퓨터 톈허1. 중국국방과기대학 자료 사진



슈퍼컴퓨터로 무엇을 할 수 있나?



이 질문은 슈퍼컴퓨터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던질 만한 질문이지만, 대답하기가 상당히 애매모호한 질문이기도 하다.  1980년대 후반에 16비트 컴퓨터를 사달라고 졸라대던 중학생 시절의 필자에게 컴퓨터를 사주면 뭘 할수 있냐고 물어보시던 부모님의 질문과 통하는 바가 있다. 당시 중2짜리가 최선을 다해 답변한 대답은  ‘그냥 모든 걸 다 할 수 있어요’였다.  안타깝게도 부모님의 지갑을 열게 하는 데 실패한 답변이었지만, 지금 물어보아도 나는 그보다 나은  답을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터넷 서핑, 게임에서부터 캐드(CAD), 프로그래밍에 이르기까지 일반 컴퓨터하나만 가져도 그 사용처가 무궁무진하듯이, 슈퍼컴퓨터도 역시 다양한 곳에서 여러 목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  만일 슈퍼컴퓨터 소유자가 게임을 즐기고 싶으면 엄청나게 비싼 장비를 이용하는 게임 유저가 될 수도 있는 것이고 슈퍼컴퓨터로 영화관 예약을 원한다면 빛처럼 빠른 스피드로 예약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현실적으로 볼 때 슈퍼컴퓨터의 유지 및 관리에는 엄청난 비용과 공간이 필요하므로 대부분 여러 인원이 함께 참여하는 대형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사용된다.


현재 슈퍼컴퓨터가 사용되는 곳을 정리해 보면, 일기 예보, 기상 연구,  단백질 입체 구조 예측, 양자 역학, 생물학적 화합물의 성질 계산, 항공기의 비행 및 충돌 시뮬레이션, 핵 무기의 폭발 시뮬레이션, 핵융합의 연구, 우주 탐사, 경기 예측 등이 있다. 이밖에도 일반 컴퓨터로는 수행하기어려운 각종 프로젝트나 무한한 계산 자원이 필요한 각종 시뮬레이션에 반드시 슈퍼컴퓨터가 사용되고 있다.



슈퍼컴퓨터, 가격은 얼마 정도 하나?



물론 슈퍼컴퓨터를 아들한테 생일 선물로 사줄 수는 없다. 실은 대기업 몇 군데가 모여도 단 한 대를 구매하는 데 부담을 느낄 만큼 고가의 장비가 바로 슈퍼컴퓨터이다.  일본 문부과학성 발표자료를 보면, 일본 이화학연구소의  케이 컴퓨터를 구축하는 데 든 비용이 1120억 엔이었다. 우리돈으로 무려 1조 7천억 원의 예산을 들여 컴퓨터 한 대를 만든 것이다.  2010년 6월 세계 1위를 차지했던  중국의 톈허-1(Tianhe-1, 天河一号)의 경우에는 1070억 원, 2009년 11월까지 1위였던 미국의 로드러너(Roadrunner)의 경우에는 1770억 원가량의 제작 비용이 들어갔다.


만드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유지비로도 상상을 초월하는 비용이 소요된다.  케이 컴퓨터를 유지하는 데에 연간 1200억 원의 경비가 들어가며 톈허-1에는 연간 약 200억 원의 경비가 들어간다. 이토록 비싼 제작비와 유지비는 아무리 슈퍼컴퓨터를 원해도 함부로 슈퍼컴퓨터를 제작하거나 도입할 수 없게 하는 주된 이유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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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컴퓨터와 국가의 기술력



퍼컴퓨터 한대 정도 있다고 국가의 기술력이 당장에 향상되는 것은 아니라는 견해를 접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필자는 슈퍼컴퓨터가 한 대 완성될 때마다, 그 즉시 국가 기술력이 한단계씩 업그레이드 된다는 쪽에 동의하고 싶다.  슈퍼컴퓨터의 무시하지 못할 장점 중 하나가 바로 다수의 이용자가 원격지에서 공동으로 이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 공공사업을 위해 아무리 값비싼  실험이나 관측 장비가 도입된다 해도 이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과 공간은 대체로 한정되어져 있지만,  슈퍼컴퓨터는 멀리 떨어진 그룹도 원하는 과제를 마음껏 수행할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어 2011년 11월 기준으로 세계 슈퍼컴퓨터 랭킹  5위인  츠바메(TSUBAME)가 설치되어 있는 도쿄공업대학이 최근 발표한 바를 보면,  약  3년 동안 61개에 이르는 외부 과제가 이 컴퓨터를 이용해 수행되었다.  분야를 보면, 제약 기술, 유전자 해석 기술, 나노 재료 가공 디바이스의 개발, 사회적 리스크 관리를 위한 시물레이션 등이며, 정부 기관뿐 아니라 민간 기업에도 슈퍼컴퓨터를 개방해 국가 기술력 전반에 걸쳐 약 5년에서 10년가량 기술력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하였다고 자평하고 있다.  슈퍼컴퓨터와 관련없는 미츠비시화학 과학기술 연구센터가 이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최소 5년가량 앞당겨 차세대 기술을 확립했다고 발표한 사례는 이러한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슈퍼컴퓨터를 제대로 활용하면,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정보를 남보다 빨리 얻어낼 수 있다. 정보의 획득 속도가 곧 경쟁력이며 이것이 때로는 국가 경제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기 때문에 , 세계 각국이 앞다투어 슈퍼컴퓨터 개발에 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 과학 기술의 선진국임을 자처하는 국가가 수천억 원의 자본을 들여 최고의 슈퍼컴퓨터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슈퍼컴퓨터의 순위는 현재 해당 국가의 경제상황 및 국가 경쟁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렇다면 한국의 슈퍼컴퓨터 경쟁력은 어떠한가. 최근 세계 슈퍼컴퓨터 순위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능이 좋은 기상청 슈퍼컴퓨터 3호기(해온)가  31위를 차지했다.  2009년까지만 해도 500위권에 들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많은 발전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 기술력을 따라잡기 위해  국가 차원의 대규모 투자를 아끼지 않는 중국(랭킹 2위, 4위)과, 동북아 대지진의 여파에서 탈출구를 찾으려 전력 투구 중인 일본(랭킹 1위, 5위)이 전통적 슈퍼컴퓨터의 강국인 미국(3위)을 제치고 최근 상위권을 차지한 것은 '슈퍼컴퓨터 31위'인 대한민국이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조태호 (일본 이화학연구소 특별연구원)


바로가기: 한겨레 사이언스온


게임해서 노벨상을 받는다구요?


 동네 오락실에서 게임에 열중하던 아이들을 꾸짖으며 끌고 나오는 1980, 90년대의 어머니들을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국내에서만 연간 6조 5천억원의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현 시대 게임 산업의 위상은, 게임에 대한 시대적 관심과 기술적 배경이 과거와 크게 달라 졌음을 시사하고 있다.

 지난 2008년, 워싱턴 대학의 한 단백질 구조 연구팀이 ‘게임에 참여해서 노벨상에 도전하세요’ 라는 구호를 내 걸고 폴드 잇(Fold it)’ 이란 이름의 게임을 세상에 내 놓았을 때, 제 아무리 게임의 위상이 달라 졌다 한 들 설마 게임만 한다고 진짜 노벨상을 받겠냐며 웃어 넘긴 이들도, 이 게임으로 인해 만들어진 단백질 구조가 며칠전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에 실렸다는 소식 만큼은 그냥 넘어가기 힘들것 같다. 

관련 기사: 조선일보 9월 20일 [게이머가 암/에이즈를 치료 실마리 3주만에 찾았다]

 

세계적인 석학, 세계적인 아이디어

 ‘폴드잇’ 개발팀을 이끄는 데이비드 베이커 교수는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백질 구조 예측 시스템인 ‘로제타(ROSETTA)’를 개발한 생화학자다. 그는 2000년대 중반에, 단백질 구조 예측에는 고도의 성능을 지닌 컴퓨터 시스템 자원이 필요하다는 기존의 관념을 뒤엎고, 세계 네티즌이 가지고 있는 무수한 개인용 컴퓨터(PC)들의 남아도는 자원을 짬짬이 활용하는 ‘로제타엣홈(Rosetta@home)’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성공 사례는 많은 전문가들이 베이커 교수를 왜 이 분야의 세계 최고라고 일컫는 데 주저함이 없는지 잘 말해주고 있다.
 

그동안 독특한 아이디어와 이를 통한 실제 성과를 선보이며 주목받은 그였기에, 이러한 ‘노벨상 게임’ 제작과 발표는, 세계 관련 과학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 게임을 이용해 HIV 같은 난치병의 원인으로 알려진 프로테아제 효소의 구조를 밝혀냈다는 이번 <네이처> 논문은 그의 새로운 도전에 대한 검증 결과가 확연한 성공을 가리키고 있음을 보여주어 다시 한 번 놀라움과 함께 그가 개발한 게임을 주목하게 하고 있다.
 

의외로 쉬운 원리의 ‘노벨상 게임’

 예상과 달리 폴드잇 게임의 기본 원리는 상당히 단순하다. 단백질 구조는 알파 헤릭스와 베타 시트, 그리고 이 둘 사이를 이어주는 루프로 이루어져 있다. 기존의 구조 예측 방법은, 각종 환경 변수와 에너지 함수의 복잡한 관계를 컴퓨터로 계산해 이들 세 가지 구성 요소들을 입체 공간 안에 실제와 가장 유사하게 배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폴드잇은 이런 접근 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즉, 이들 각 구성 요소의 위치를 전 세계에서 자원하여 참여한 네티즌 게이머들로 하여금 직접 예측해보게 설계했다. 단백질 구조를 모르는 게이머들을 위해 알파 헤릭스는 스프링 모양으로, 베타 시트는 지그재그 모양의 화살표로, 루프는 단순한 선으로 바꾸어, 참여한 게이머들이 마우스를 사용해 이들을 쉽게 움직이게 만들어 놓았다.

 이리 저리 움직여가며 최적의 에너지값을 가지는 위치, 곧 ‘가장 안정된 입체 구조’를 찾는 순간에 게임은 종료되고 하나의 단백질 구조 예측이 끝나게 된다. 이런 새로운 접근 방식이, 복잡한 형태로 인해 지난 10여 년 동안 그 내부 구조를 알수 없었던 난치병의 원인 단백질을 단 3주 만에 밝혀낼 수 있게 한 것이다.

 

폴드잇을 이용해 게임을 실행한 모습폴드잇을 통해 구조가 밝혀진 프로테아제 효소의 구조

 

아이디어를 실현해 내는 그들의 저력

 아이디어는 단순했을지 몰라도, 이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하여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단백질 구조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게이머들을 보이지 않게 안내하는 수천 가지의 함수들이 필요했으며, 갖가지 돌발 변수에 철저히 대비해야 하는 정교한 프로그래밍의 배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베이커 교수가 이를 구현해 내기까지 세계적인 인재들로 구성된 개발팀이 중추적 역할을 해냈지만, 이들의 든든한 재정적 배경이 된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 미국과학재단(NSF) 같은 정부기구들과, 마이크로소프트나 어도비처럼 미국에 근거를 둔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기업의 다양한 협력도 뒤에 있었다.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과 인적 자원, 재정과 사회적 지원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게임 하나를 통해서도 노벨상을 노리게 만드는 이들의 모습은, 노벨상 수상자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국내 과학계와는 어디에서 차이가 시작되고 있는지 돌아보게 만드는 한 가지 사례가 되는 듯하다.


조태호 (일본 이화학연구소 특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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